호소력 짙은 창법의 세미트로트 ‘같이 가자’
중견 트로트 가수 우설민이 구수한 목소리의 곡 ‘같이 가자’(우설민 작사 김정일 작곡)로 성인가요팬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고 있다. 세월도 지나고 사랑도 멈췄지만 아직 같이 갈 수 있다면서 호소력 짙은 창법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경쾌한 리듬의 세미트로트.
우설민은 트로트 가수로 크게 출세하진 못했다. 그러나 성인가요팬들과 관계자들 사이에선 고참 실력파로 꼽힌다. 지난 1989년 ‘광진교’라는 곡으로 KBS ‘TOP 10 가요 쇼’에서 18위에 오를 정도로 바람을 일으켰고, 1993년에는 표기배라는 예명으로 트로트 발라드 ‘사랑의 일 순위’를 불러 호평을 듣기도 했다.
특히 2003년에는 ‘가지마라 여자야’로 지역민방 합동프로그램 ‘전국 TOP 10 가요 쇼’에서 3위에 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우설민은 당시 지상파의 온갖 연예 프로그램에 50여회나 출연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운이 따르지 않아 2011년 대장 게실이 터져 큰 수술을 받으며 고생을 했다. 활동을 멈추고 3년 동안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지만 3년의 활동 중단은 모든 걸 힘들게 만들었다. 경제적인 문제도 컸고 그 사이에 방송환경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섯 살 때 동네 유선방송 전속가수로 노래
우설민은 굴하지 않고 2015년 ‘같이 가자’를 발표하며 재기에 나섰다. 방송환경이 크게 바뀌었지만 각종 이벤트와 공개방송에 적극 참여하며 신곡 홍보에 나섰다.
그러나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아 마음이 급해졌다. 곡이 부족한가 싶어 2017년 다른 신곡 ‘경호원’을 발표해 부르기도 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여서 다시 ‘같이 가자’를 부르기 시작했다.
충남 서천 태생의 우설민의 본명은 김성규. 여섯 살 때 서천유선방송의 전속가수로 뽑혀 ‘한 많은 대동강’, ‘짝사랑’ 등을 노래할 정도로 가창력을 타고 났다.
말이 유선방송이지 라디오도 별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라디오를 BB선(전화선)에 연결해 듣던 방송이었다. 여섯 살짜리 우설민은 당시 1주일에 두 번씩 유선방송국에 출연해 축음기를 틀어놓고 그 노래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후 인근에서 열리는 각종 노래자랑은 그의 독무대였다. 중3 때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잊지 못한다. 영어를 가르치신 조항덕 선생님이었는데 “넌 커서 가수가 되라”고 말씀해주셨다.
우설민은 제대 후 작곡가 남봉룡 선생에게 발탁돼 오아시스레코드사의 전속가수가 되며 밤무대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넌 배호 남진 나훈아 세 가수의 좋은 목소리를 다 갖고 있다”고 칭찬해준 작곡가 배상태 선생에게 사사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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