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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사운드트랙

어릴적 친구 민호가 부른 '마틸다'

봉우재에 살던 내 시골 친구 민호는 어릴 적 별명이 '목화꽃'이었다.

7월 여름방학 전 목화 꽃봉오리가 솟아나기 시작할 때 아이들은 이 녀석들을 따먹곤 했다. 대단한 맛은 아니었지만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묘한 맛이었다.

국민학교 등하교길 길가에 있던 목화밭 꽃봉오리들은 언제나 아이들의 먹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어느날 아침이었다. 목화밭 주인 할아버지가 민호를 끌고 학교로 와 담임 선생님에게 한참동안 항의를 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민호가 목화 꽃봉오리를 따먹다가 이 할아버지에게 잡혀 현행범으로 학교까지 끌려온 것이다. 민호는 결국 교실 앞에 서서 울먹이며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목화꽃을 따먹지 않겠습니다"라고 몇번 반복해 말한 다음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국민학교 3학년이었는지, 4학년이었는지 정확히 생각나질 않는다. 이후 아이들은 민호를 목화꽃이라며 놀리곤 했다.

그 반의 여자 아이들은 몰라도 남자 아이들 치고 목화 꽃봉오리를 따먹지 않은 녀석은 거의 없었다. , 그 밭 앞으로 지나 다니지 않은 녀석들은 따먹을 수가 없었겠다. 하여간 목화 꽃봉오리를 따먹다 현행범으로 잡힌 아이는 민호 하나밖에 없었으니 그렇게 놀림을 받을 만도 했다.

그런데 우리의 이 '목화꽃 민호'가 그 당시 <마틸다>라는 최신 팝송을 불러 우리들의 입이 벌어지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무슨 오락시간이었는지 아니면 장기자랑이었는지 민호가 교단 위에 올라가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휘파람을 불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헤이! 마틸다, 마틸다, 마틸다~/쉬 테이크 미 모니 앤 런 베네주엘라/언스 어겐 나우!/마틸다, 마틸다, 마틸다~/쉬 테이크 미 모니 앤 런 베네주엘라/파이브 헌드레드 달러스, 프랜즈, 아이 로스트~."

와우! 당시 우린 영어는 커녕 ABC도 모르던 시절이었는데 민호는 영어를 그것도 노래를 영어로 불러댔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나증에 커서 알아보니 그 노래는 카리브해 섬나라 트리니다드 앤 토바고의 민요에서 유래된 칼립소 리듬의 곡이었다. 근처의 여러 마을 전체에 라디오 한 대 없던 시절이었는데 우리의 민호가 그 노래를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배웠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수년 전 은퇴 후 국민학교 동창생들과 어울리다가 얼결에 콜라텍에 끌려간 일이 있었는데 우리의 호프 민호는 사교춤에서도 멋진 스텝으로 파트너를 능수능란하게 리드하며 최고의 춤솜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열한 살짜리 민호가 칼립소 리듬의 곡 <마틸다>를 멋들어지게 불러제칠 만했다는 걸 난 뒤늦게 깨달았다.

https://youtu.be/5C-DShN82mc